나에게 심보선 시인은 특별하다. 그의 시를 좋아하고, 같은 감수성을 공유하고 있다 믿는다. 전집을 갖고있는 유일한 시인일뿐 아니라 유의미한 기억과 연관되어 있기도 하고, 여차저차해서 감정이입이 더 깊다. 특히 대학원에 진학하기 전 보았던 그의 대학신문 인터뷰는 나에게 지대한 영향을 미쳤는데, 그게 좋은 영향인지 나쁜 영향인지는 신만이 아실 일이지만 막스 베버의 <직업으로서의 학문>을 읽는 계기가 되었기 때문이다. 그리고 베버의 책에 감명받은 나는 눈물을 흘리며 대학원에 진학하여 졸업하고 백수가 되었다. 일하기 싫은 백수 나는 지금 블로그에 뭐라도 적으려고 뒤적거리다 심보선의 글을 다시 읽었고, 베버의 글을 다시 생각해보는 기회를 가졌다.
일단 눈가리개를 하고서,어느 고대 필사본의 한 구절을 옳게 판독해 내는 것에 자기 영혼의 운명이 달려있다는 생각에 침잠할 능력이 없는 사람은 아예 학문을 단념하십시오.
베버의 <직업으로서의 학문>은 1차 세계대전 발발 1년 후인 1919년에 집필되었다. 당시 독일에서는 교수들이 적극적으로 정치참여에 나서야 한다는 여론이 거셌고, 대부분의 대학교수들 역시 소위 '지식인의 역할'을 다하기 위해 교사로서나 학자로서나, 연구영역에서나 교단에서나 적극적으로 노력했다. 하지만 베버는 이에 맞서 학자로서의 교수는 특정한 세계관이나 당파의 입장에서 학생들을 지도해서는 안되며, 학문 영역에 있어서는 "연구문제의 설정"외에는 주관을 배제하고 과학적 논리성에 엄격하게 기반하여 연구할것을 강조한다. (이 논의는 베버의 과학론과 사회과학 연구방법론으로 이어진다.)
하지만 학자와 학문, 연구자와 과학의 관계를 표현하는 베버의 논지를 "주제에 대한 헌신"으로 요약하는 심보선의 글(하단)과는 달리, 베버가 학문에 대한 엄격한 헌신을 강조하는데는 또 다른 이유가 있다. 당시는 많은 교강사 자리가 추천권에 의해 좌우되는 상황이었고, 계속 변하는 전쟁상황이나 여론에 따라 수많은 재능있는 학자들이 출신성분이나 사상에 따라 잘려나가던 시대였다. 베버는 이렇게 말한다.
이와 같이 학자의 길은 거친 요행의 세계입니다. 젊은 학자들이 교수자격 취득에 관해 조언을 구하러 올 때, 그들에게 이 길을 가도록 격려하는 것은 무책임한 일이라고 볼 수 있습니다. 만약 이 젊은 학자가 유태인이라면 사람들은 그에게 당연히 '모든 희망을 버려라'말합니다. 그러나 유태인이 아닌 다른 모든 사람에게도 다음과 같이 그의 양심에 대고 물어야 합니다. '당신은 평범한 인재들이 해마다 당신보다 앞서 승진하는 것을 보고도 내적 비탄이나 파멸 없이 견딜 수 있다고 생각하는가?' 그러면 우리는 매번 두말할 나위도 없이 다음과 같은 대답을 듣게 됩니다. '물론입니다. 나는 단지 나의 천직을 위해서 살 뿐입니다.' 그렇지만 적어도 나는, 그들 가운데 내적 상처를 입지 않고 참아 내는 사람은 아주 적은 몇몇에 지나지 않다는 것을 알고 있습니다. 학자라는 직업의 외적 조건에 대한 이야기는 이 정도로 충분하다고 생각합니다.
베버가 내적 고독성과 헌신을 강조하는데는 이유가 있다. 외적인 부침에 어쩔 수 없이 쓸려나가고 무릎꿇었던 수많은 사람들을 지켜보았던 원로 학자의 탄식이다. 철저하게 외부세계와 단절되어 학문과 진보에 파고드는 행위는 적절한 학문적 태도일 뿐만 아니라, 이런 환경에서 학자들이 '버티기 위한' 유일한 대안으로 제시되고 있다. 이것을 "동시대에 대한 참여"로 읽는 심보선은, 내가 좋아하는 작가이지만 베버의 글을 정말로 오독하고 있다고 하지 않을 수 없다. 뿐만아니라 그의 연구를 받아들이거나 거부할 수 있는 '외적 조건' 즉 '사회'를 외면하고, 순전히 내적 동력과 창작의 세계에 대해 말하고 있다는 면에서 베버의 주제를 완전히 축소하고 있으며 그의 나르시즘적 낭만성을 부각시키는 도구로 사용하고 있다.
결국 이 글은 감동으로 소비했던 과거 나에 대한 반성이다. 어쨌든 학문에서 멀어진 지금 베버의 <직업으로서의 학문>을 다시 읽고 다음 글을 쓰고싶은데 쓸 수 있을지는 모르겠다. 심보선의 글은 하단 첨부.
내 삶에 가장 지대한 영향을 미친 말이 하나 있긴 있는데, 이 말은 책에서 나오지 않았다. 이 말은 돌아가신 내 아버지의 입에서 나왔다. 내가 대학생이었던 어느 날, 아버지는 술에 취해 내게 말씀하셨다. “멋지게 사는 건 너무나 쉽다. 하지만 뭔가를 이루는 것 그게 정말 어렵고 중요하다. 많은 사람들이 나를 멋진 사람이라고 부른다. 하지만 말이다. 나는 인생에서 이룬 것이 하나도 없다. 아들아, 나는 실패자다. 명심해라. 멋지게 살려하지 말고 무언가를 이루려 해라.” 나는 이 말을 듣고 꽤 충격을 받았다. 나는 어떤 말로도 아버지를 위로할 자신이 없었다. 아버지는 술에 취해 있었지만 자신의 삶에 대해 냉정히 평가를 하고 분명한 결론을 내린 것 같았다. 자신의 삶 전체에 대해 평결을 내릴 수 있는 대심문관은 오로지 자기자신일 수밖에 없다. 누군가 당신의 삶 전체에 대해 성공이니 실패니 운운했다고 치자. 당신은 좌절하거나 기뻐할 수 있다. 하지만 당신은 그 말을 신뢰할 수 없다. 그 누가 당신의 삶 전체를 속속들이 알 수 있는가? 당신 자신을 제외하고 말이다.
그때 나는 아버지의 말뜻을 제대로 이해하지 못했다. 이룬 게 하나도 없다니. 아버지는 직장도 있고 자식들을 모두 대학에 보내지 않았는가? 아버지의 말을 온전히 이해는 못했지만 아픈 진실 하나는 알게 되었다. 그것은 아버지가 한 인간으로서 매우 슬픈 존재라는 사실이었다. 그런데 나는 대학원 시절에 사회학자 막스 베버의 『직업으로서의 학문』을 읽다가 다음과 같은 구절을 발견하고 아버지가 한 말을 나의 방식으로 이해하게 됐다.
존경하는 청중 여러분! 학문 영역에서는 순수하게 자신의 주제에 헌신하는 사람만이 ‘개성’을 가지고 있습니다. 심지어 괴테같이 위대한 인물에 있어서 마저도 감히 자기의 ‘삶’ 자체를 예술 작품으로 만들려고 했던 시도는 최소한 그의 예술에는 부정적 영향을 끼쳤던 것입니다. 그러나 어쨌든 괴테 정도는 되어야 감히 그런 시도나마 해볼 수 있는 것이며, 심지어 수천년에 한번 나타날 괴테 같은 인물마저도 이 시도에 대한 최소의 대가를 치르지 않을 수 없었다는 점만은 누구나 인정하는 것입니다. 그러나 학문의 영역에서는 아래와 같은 사람은 분명 ‘개성’을 가진 사람이 아닙니다. 자신이 헌신해야 할 과업의 흥행주로서 무대에 함께 나타나는 사람, 체험을 통해 자신을 정당화하려는 사람, 어떻게 하면 내가 단순한 ‘전문가’와 다른 어떤 존재임을 증명할 수 있을까, 또 어떻게 하면 나는 형식이나 내용 면에서 어느 누구도 말하지 않는 그런 방식으로 무언가를 말할 수 있을까, 라고 묻는 사람, 이런 사람들은 ‘개성’을 가진 사람이 아닙니다. 이런 태도는 오늘날 광범위하게 나타나는 현상인데, 이는 어디에서나 천한 인상을 주며 또 그렇게 묻는 사람의 가치를 떨어뜨리고 있습니다.
위의 이야기는 마치 아버지가 베버의 입을 빌어 시를 쓰고 사회학을 연구하는 내게 하는 이야기처럼 들렸다. 이 시대에 얼마나 많은 학자와 작가들이 스스로를 하나의 작품처럼 ‘멋진 사람’으로 세상에 드러내려 하는가? 아무도 흉내낼 수 없는 자신의 업적을 세상에 뽐내려 하는가? 중요한 것은 개성을 입증하는 것이 아니라 자신이 선택한 예술과 학문의 주제에 헌신하는 것이다. 성취란 헌신의 결과이지 개성의 증명이 아닌 것이다. 베버와 아버지의 영향력 아래에서 나는 성실성을 지표로 삼아 연구를 해나갔다. 나는 오래된 신문, 책, 문서들을 파고들었다. 수많은 사람들을 만나서 인터뷰를 하였다. 온갖 종류의 자료, 증언, 담론, 이야기의 물결들로 이루어진 대양을 항해하여 어느 낯선 해변에 가까스로 당도하듯 석사논문과 박사논문을 완성했다.
그런데 나는 글을 쓰면 쓸수록 주제에 대한 헌신을 강조하는 베버의 학문관에 동의하지 않게 되었다. 여전히 베버의 학문관은 아버지의 말씀과 더불어 나의 글쓰기를 윤리적으로 감시하고 판단하는 심문관 역할을 한다. 내가 나를 포함한 모든 이의 글쓰기를 평가하는 중요한 기준 중의 하나는 바로 성실성이다. 그러나 나는 베버와 아버지 모두에게 할 말이 있다. “아버지, 그리고 베버 아저씨. 멋지게 사는 것과 뭔가를 이루는 것 말고도 다른 길이 있지 않을까요?” 베버와 아버지는 멋진 삶과 성실한 삶을 분리한다. 그런데 이 분리에는 모종의 비극성이 있다. 그 비극성이란 삶을 오로지 개인의 고독한 여정으로 보는 자의 자기 환멸 혹은 자기 극복의 파토스다. 삶과 글쓰기를 고독한 작업으로 보는 이들이 자기도취에 빠지지 않고 가치 있는 결과물을 만들려할 때 선택하는 윤리적 태도가 바로 잘 훈육된 열정으로서의 성실성이다. 그러나 나는 글을 쓰면서-그것이 시건 혹은 논문이건-깨닫게 되었다. 내가 선택하고 빠져드는 대상은 단순히 주제가 아니라는 것을, 그것은 인간들의 눈물, 탄식, 좌절, 눈물, 환호성, 기쁨, 경탄이 어려 있는 세계라는 것을, 그리하여 내가 이 세계에 대해 글을 쓴다는 것은 그 세계를 부각시키는 것이고, 그 세계와 연루된다는 것이고, 그 세계에 참여한다는 것임을 알게 되었다.
어쩌면 아버지와 베버가 말하듯 삶과 글쓰기는 고독한 작업으로 시작하여 고독한 작업으로 돌아온다. 그러나 그 출발과 회귀 사이에는 고독한 여정만이 있는 것은 아니다. 나의 몸과 영혼을 뜨겁게 하고, 내 가슴 속에서 말을 들끓게 하고, 나의 손발을 움직이게 하는 힘은 단순히 주제의 흥미로움이 아니라 바로 동시대인들의 삶이고 그 삶에 섞여드는 사물들의 동시대적 운동이다. 베버와 아버지는 삶과 예술, 삶과 학문을 분리시키라고, 그것을 하나로 합치려는 시도는 위험하다고, 지나친 열정을 잘 다스려서 성실성으로 바꾸라고 말했다. 나는 베버와 아버지의 충고를 받아들이면서도 어쩔 수 없이 삶에 이끌린다. 친구들과 연인과 동시대인이 살고 있는 삶에 매혹된다. 나는 삶과 일, 삶과 작품 사이를 쉼 없이 오간다. 돌아가신 이들의 충고와 살아 있는 이들의 부름 사이를 쉼 없이 오간다. 나의 말과 행동, 나의 기쁨과 슬픔은 그 사이 어디에선가 태어나고 소멸하고 다시 태어난다.
출처: 대학신문 2012/03/2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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