감상/영화

    망하거나 죽지 않고 살 수 있겠니: <라라랜드> (220609 수정)

    망하거나 죽지 않고 살 수 있겠니: <라라랜드> (220609 수정)

    오늘 아주 우연히, 좀처럼 배달음식을 시켜먹지 않는 우리 집에서, 그것도 8시가 넘은 시간이면 엄격하게 나의 절식을 권고하는 엄마가, 순전히 요즘 본인이 보드람치킨에 꽂힌 바람에.... 잠깐 거실 TV로 뭘 볼까 고민해야 하는 순간이 왔다. 그리고 또 나는 뭘 볼지 고민하는 시간을 굉장히 아까워하는 편이라 항상 위시리스트를 꽉꽉 채워놓는 편인데 스트리밍 플랫폼 중 왓챠는 다인 계정에 얻어 타고 있고 이 계정에는 내가 '보고 싶어요'로 지정한 영화나 프로그램이 별로 없어서 나는 드물게 무작정 카테고리를 뒤적거렸고 정말 정말 어쩌다가 영화관에서만 7번 넘게 본 를 틀게 되는데... 여기까지만 해도 한 5개정도의 우연이 겹친 셈인데 이렇게 해서 오늘이 아니었다면 평생 몰랐을 사실 몇 가지를 알게 되었다. 1...

    <프로메테우스>: 종교적 의례, SF의 혼돈-재창조 내러티브

    <프로메테우스>: 종교적 의례, SF의 혼돈-재창조 내러티브

    (2012.4. 레포트로 제출.) 1. 서론 지구 문명이 외계인, 공룡, AI 등 타자와의 접촉으로 파멸하는 숱하게 있었고 또 제작되며 대중들을 불러 모으고 있다. 우리가 현재 과학과 합리주의의 세계에서 살고 있고, 영화 제작 산업은 그 첨단 기술이 빠르게 유입되는 분야 중 하나라는 것을 생각해 보면 이 가상의 혼돈-재창조 내러티브는 인위적으로 사회를 혼돈 상태로 끌고 갔던 종교적 의례와 유사한 모습을 보인다. 과학의 발전으로 상징되는 직선적 시간관이 픽션에서나마 전복되고 이전과는 다른 모습으로 복구되는 이러한 이야기가 반복해서 제작되고 대중들을 끌어모으는 현실은 그 자체로 의미심장하다. 이러한 SF영화 중 가장 최근의 예를 들자면 리들리 스콧의 영화 가 있다. ‘기술적 진보’를 상징하는 라는 이름은 여..

    <데칼로그>: 계율의 목적=인지

    <데칼로그>: 계율의 목적=인지

    (2012.7월) ① 야훼 이외의 다른 신을 섬기지 말라. ② 우상을 섬기지 말라. ③ 하느님의 이름을 망녕되이 부르지 말라. ④ 안식일을 거룩히 지키라. ⑤ 너희 부모를 공경하라. ⑥ 살인하지 말라. ⑦ 간음하지 말라. ⑧ 도둑질하지 말라. ⑨ 이웃에게 불리한 거짓증언을 하지 말라. ⑩ 네 이웃의 재물을 탐내지 말라. 십계명의 교리는 명확하고 의심의 여지가 없다. 모든 금기와 마찬가지로 십계명 역시 인간을 ‘제한’하기 위해 만들어졌다. 이런 제한이 만들어진 이유는 그 당시 인간을 ‘제한할 필요가 있었다’는 뜻이고, 여기서 반대로 유추하자면 인간들이 그런 모습을 하고 있었다는 뜻이 된다. 다시말해 구약성서의 시대는 야훼 이외의 다른 신들이 난립했고, 우상을 숭배했으며, 하느님의 이름을 망녕되이 부르는 시..

    (대략 10년 전) 가장 좋아하는 영화

    (대략 10년 전) 가장 좋아하는 영화

    (2010년에 씀. 아직 두 영화 좋아하고 가끔 본다. 취향은 변하지만 좋아하는 작품은 쉽게 변하지 않는다.) 좋아하는 영화를 꼽기는 쉽지만, “가장” 좋아하는 영화를 꼽자면 참 힘들다. 어쨌든 두 편이 떠오르기는 하지만 사실 인생을 바꿔놓은 것도 아니고, 딱히 교훈을 준 것도 아니라 ‘인생의 영화’라는 거창한 타이틀에 어울리는 작품들인지는 잘 모르겠다. 어쨌든 영화 두 편. 과 이 두 영화의 공통점은 일단 ‘한심하다’는 거다. 의 주인공 조엘은 여자친구에게 차인 뒤 홧김에 기억을 지우러 간 일관성 없는 찌질이고, 의 주인공 레이 역시 죄책감에 괴로워하면서도 여자나 헌팅하러 다니는, 마찬가지로 나약하고 일관성 없는 찌질이다. 이 두 주인공들은 영화 내내 멍청한 짓을 하고, 영화는 이 둘을 따라 빙글빙글 ..

    우리를 울게 하는 것들

    우리를 울게 하는 것들

    (2011.11.30.) 의 주인공 로이는 가진 걸 다 잃은 삼류 스턴트맨입니다. 촬영 중 큰 사고를 당해서 하반신이 나갔는데, 연인은 그때 다른 남자와 입맞춤을 나누고 있었어요. 한순간에 반신불수, 마약중독자, 알콜중독자가 돼버린 그는 죽을 계획을 세웁니다. 그 계획이란 호기심 많은 소녀 알렉산드리아가 껌뻑 죽을 만큼 재미난 이야기를 들려주고는, “더 듣고 싶으면 ‘모르핀’이라고 쓰여 있는 약병을 가져오라”고 꼬드기는 것이었습니다, 이야기에 흠뻑 빠진 알렉산드리아는 그의 의도대로 움직입니다. 하지만 훔쳐온 약은 가짜였고 절망감에 몸부림치는 로이를 위해 다시 약을 훔치려던 알렉산드리아는 발을 헛디뎌 크게 다치고 맙니다. 죽다 살아난 알렉산드리아가 이야기를 마저 해달라고 부탁하자, 로이는 등장인물들을 모두..

    <문라이트>: 개인의 탄생, 관계와 세계

    <문라이트>: 개인의 탄생, 관계와 세계

    (2017.4.7.) 성장영화라는 장르, 소수자로서의 정체성 의 주 소재는 흑인(블랙) 사회적 약자인 성소수자(리틀)이다. 또한 1부의 소제목 ‘리틀’은 작은 아이였던 샤이런이 성장하는 성장영화임을 암시한다. 리틀, 샤이런, 블랙 소년부터 성인까지의 긴 시간을 다루고 있는 의 캐릭터들은 독특한 특징을 가지고 있다. 의 가장 큰 특징은 주인공의 다른 세 인생시기를 다루고 있고 이에 따라 세 사람의 다른 배우가 세 개의 다른 이름을 갖고있는 한 명의 주인공을 연기한다는 점이다. 3개로 분절된 서사는 각각 3막구조의 발단-전개, 위기-결말을 담당하면서 각 부에서도 독립된 기승전결의 전개를 보인다. 즉 한 인물의 연속적인 성장기인 동시에 따로따로의 완전한 이야기이기도 하다는 이야기다. 이런 이야기의 분절과 연속..

    <어벤져스: 엔드게임>: 21세기 여성혐오의 교과서

    <어벤져스: 엔드게임>: 21세기 여성혐오의 교과서

    들어가기 전 잡담: 나는 시리즈의 팬은 아니다. 를 극장에서 5번 보고, 미국 버전에만 포함된 슈와마 쿠키 장면을 보려고 미군 부대에 초대를 받아 들어갔었지만 이 시리즈를 싫어한다. 과거에 조스 위든의 팬이었고 그가 만든 드라마 를 여러 번 재주행했다. 그러나 의 첫 장면이 시작하는 순간, 그러니까 블랙 위도우가 자장가로 헐크를 재우는 순간 이 시리즈가 싫어졌다. 농장만 생각하면 손발이 덜덜 떨리고 눈물이 난다. 에도 그 배경으로 농장이 나오는데 뛰쳐나갈 뻔 했다. 블랙 위도우의 과거 설정이 그럴 줄 누가 알았으며, 호크아이가 유부남일 줄 누가 알았겠어? 그따구 반전을 굿아이디어라고 추진한 놈들 아직도 패버리고 싶음. 그 뒤 조스 위든이 저질렀던 불륜이며 어록들이 줄줄이 풀렸고... 을 보고 토니에 이입..

    <부르카 복서>: #우리에겐_페미니스트_선생님이_필요합니다

    <부르카 복서>: #우리에겐_페미니스트_선생님이_필요합니다

    중학교, 남자애들이 여자 탈의실에 카메리를 설치해 놨다는 소문이 돌았다. 체육 선생님은 지각생들을 엎드려 뻗쳐 시키고 때리면서 치마를 걷어붙인 허벅지 쪽으로 웃곤 했다. 고등학교, 국어 선생님은 시집도 못갈 년들이라는 말을 일상적인 욕으로 썼다. 윤리 선생님은 매 시간마다 음담패설을 했는데, 신혼 첫날밤 터진 처녀막이 꼭 떡볶이 같았다는 말에 학부모들이 항의했지만 징계를 당하는 일은 없었다. 대학교, 개인 문집을 만들어 1:1면담을 해야 했던 글쓰기 수업에서 여자애들은 "문학 소녀"라 처음엔 글을 잘 쓰는것처럼 보이지만 결국 자기만의 세계에 갇여서 사회적인 시각을 갖추지 못한다는 말을 들었다. 모욕감에 기가 죽었다. 그리고 처음 들어간 사회학 입문 수업에서 페미니즘을 배웠다. 남자 혐오자라는 소문이 돌았..

    <한나 아렌트>: 그리고 창백한 푸른 점

    <한나 아렌트>: 그리고 창백한 푸른 점

    는 영화로만 평가하자면 그저 그랬다. 영화는 아이히만 재판 취재로 시작해서, 아렌트가 에서 아이히만을 살인마 괴물이 아닌 '평범한 인간'으로 묘사해 같은 유대인들의 격렬한 혐오와 맞서게 되는 내적 외적 투쟁을 보여준다. 사실 사건이랄게 별로 없으니 영화로서의 재미는 떨어질 수밖에 없다. 하지만 별 일이 일어나지 않는다는 건 시놉시스에서부터 드러나고, 한나 아렌트가 누군지 모르는 사람들을 끌어들일만한 내용도 아니니, 이 영화는 처음부터 나같은 아렌트 숭배자들과 덕심을 공유하려 만들지 않았나 싶다. 초반부에서 아렌트는그녀의 글에 대한 변론을 거부한다. 자신의 의도는 모두 글에 묘사되었다는 것이다. 하지만 대중의 비난과 친구들의 절교, 공개적 모욕을 겪은 뒤 마침내 변론, 즉 자신의 입장을 명확히 밝히기 위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