감상/책

    떠나간 자녀를 잊지 못하는 마음으로: 신영복, <담론>

    떠나간 자녀를 잊지 못하는 마음으로: 신영복, <담론>

    며칠 전에 블로그에 올릴 재료들을 이것저것 찾아보다가 또 n년 전 열공했던 기록을 봤는데 정말...지금 진로를 따져보았을 때 1도 도움이 안 된데다 앞으로 쓸모가 있을 것 같지도 않고 혹시 약을 팔 일이 생겨도 소용 없다는 생각이 들었다 정말로 다 까먹었으니까... 그때 내가 처절하게 씹어 삼켰다고 생각한 공부의 기록은 마치 초면의 그뭔씹 나무위키 게시글을 보는듯 신기하고 재밌기만 했던 것이다! 어차피 이렇게 될 걸 뭘 그렇게 치열하게 공부하고 고민했는지 황당해서 웃음만 나왔다. 심지어 가장 애를 먹었고 열심히 했던 통계와 프로그래밍은 까먹은건 둘째치더라도 너무 시류가 지나서 국 끓여먹을 건더기도 안 남았다. 그런데도 내나이 환갑에 팔자에도 없는 수학뇌 만든다고 갖은 고생을 다 시키고...심지어 또 나름..

    <나폴리 4부작>과 리바이어던 잡문 (2019)

    <나폴리 4부작>과 리바이어던 잡문 (2019)

    처음에는 어울리지 않는 조합이라고 생각했다. 하지만 을 설명하는데는 의 이미지가 필요하다. 소설은 사랑과 욕망과 인간에 대해 다룬다. 0과 1을 존재와 비존재, 완전과 불완전으로 설명할 수 있다면 인간은 모두 0에서부터 1까지를 오가며 진동하는 존재이다. 사람의 성격과 인생만큼 그들 내면도 수없이 많은 부분이 합쳐서 전체가 되고 자신이 갖고 있지 않은 것을 욕망한다. 하나하나의 인간이 가진 욕망과 무수한 감정들 인생들은 전체의 세계를 구성한다. 규칙 없이 무한히 불신하며 죽고 죽이는 자연 상태, 나폴리, 세계이다. 하지만 욕망은 자기 자신의 결핍에서 시작된 만큼 충족되었을 때 차갑게 버릴 수 있는 것이기도 하다. 소설의 후반부는 그래서 서늘하다. 주인공인 레누는 평생 지식, 지식인의 삶, 명성, 그리고 ..

    구묘진, <악어노트> 짧은 발제 (2022)

    구묘진, <악어노트> 짧은 발제 (2022)

    저자소개 (https://tumblbug.com/queernote편집) 저자 구묘진(邱妙津, Qiu Miaojin)은 타이완의 전설적인 천재 소설가다. 그가 대담하게 써 내려간 논바이너리 레즈비언 감수성의 문장은 아시안 퀴어 문학과 타이완 동성결혼 법제화에 큰 영향을 끼쳤다. '악어 노트'는 대만의 동성결혼 합법화 투쟁을 촉발시킨 소설로 평가받는다. 실제 대만은 올해 5월 아시아 최초로 동성끼리의 결혼을 허용하는 법안을 통과시켰다. 구묘진은 1969년 타이완 서쪽 작은 마을인 창화현彰化縣에서 태어났다. 타이베이시의 제일여자고급중학을 졸업하고 국립타이완대학에서 심리학을 전공했다. 그의 천재적인 재능은 일찍부터 발휘되어 대학 시절에 이미 소설 『죄수囚徒』로 중앙일보 단편소설문학상을 받았으며, 『고독한 대중寂..

    <다섯번째 계절 The Fifth Season> 읽어주세요 읍소 (2020)

    <다섯번째 계절 The Fifth Season> 읽어주세요 읍소 (2020)

    “언젠가는 우리처럼 훌륭해질 수 있다고 말해 주어라. 어떤 대접을 받든 우리에게 속한 몸임을 알려 주어라. 다른 사람들과 똑같이 존중받고 싶다면 노력해 얻어야 한다고 말해 주어라. 인정받기 위해서는 기준을 충족해야 하며, 그 기준은 바로 완벽함이다. 이 모순을 조롱하는 자가 있다면 죽여라. 그리고 남은 자들에게 그들이 나약함과 의심 때문에 죽어 마땅했다고 말해 주어라. 그러면 그들은 불가능한 것을 이루기 위해 자진하여 망가질 것이다.” 스터디에 천재소설 읽어달라고 애원하기 위해 쓴 글.. SF나 판타지 소설을 읽을 때 세계관에 관대한 편이다. 제일 싫어하는 건 설정집이다. 이야기 안에서 설명되는 선에서 그치고 '뇌절'하지 않을 때, 장대한 설정이 팬북일 때는 허용이다. 그런데도 새로 읽을 책을 고를 때 ..

    <기이한 것과 으스스한 것The Weird and the Eerie> (2020)

    <기이한 것과 으스스한 것The Weird and the Eerie> (2020)

    기이한 것과 으스스한 것은 둘 다 통상적 이해를 뛰어넘는 외부세계에 대한 매료로 거칠게 요약할 수 있습니다. "이러한 매혹은 대게 어떤 불안이나 어쩌면 두려움까지 아우르지만, 기이한 것과 으스스한 것이 반드시 무서운 것이라고 할 수는 없다." 둘은 비슷하면서도 다른데, 기이한 것은 불규칙한 배열, 형언할 수 없음, 우리가 가지고 있는 기존 개념으로 포섭할 수 없는 낯선 것 등으로 외부 세계와 난데없이 연결되고 시간이 무한 순환하는 등의, (제가 처음에 이해하기로는) 미스터리 개념과 비슷한 것 같았습니다. 설명을 요구하지만 적절한 설명이나 답을 찾을 수 없는 문제 같은 거라고 생각했습니다. 하지만 으스스한 것이 미스터리라는 것이 밝혀집니다. 으스스한 것은 부재의 오류와 존재의 오류ㅡ즉 부적절함, 있어야 할..

    가장 로맨틱했던 SF소설, <크로스토크>

    가장 로맨틱했던 SF소설, <크로스토크>

    * "자기소개", "가장 좋아하는"의 키워드로 SF&오컬트 스터디에 기고한 글입니다 「나도 우연히 발견했어. 내 머릿속 목소리의 원인이 뭔지 알아내려고 여기로 조사를 하러 왔었거든.」 C.B.가 브리디를 바라보며 미소를 지었다. 「흔히 책이 피난처가 될 수 있다고들 하잖아. 확실히 맞는 말이야.」 ‘피난’은 적절한 표현이었다. 브리디는 극장에서 목소리가 들리기 시작한 이래로 공포에 질려 쿵쾅대던 심장이 처음으로 차분하게 가라앉았다. 「그래서 널 여기로 데리고 온 거야.」 C.B.가 말했다. 「우리가 네 방어벽을 세우는 동안 책을 읽는 사람들이 목소리들을 차단해줄 거야.」 「책을 읽는 사람들이 방어벽이라며?」 「방어벽 중에 하나지. 다행히 거의 아무 때나 이용할 수 있는 방어벽이야. 낮이든 밤이든 사람들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