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언젠가는 우리처럼 훌륭해질 수 있다고 말해 주어라. 어떤 대접을 받든 우리에게 속한 몸임을 알려 주어라. 다른 사람들과 똑같이 존중받고 싶다면 노력해 얻어야 한다고 말해 주어라. 인정받기 위해서는 기준을 충족해야 하며, 그 기준은 바로 완벽함이다. 이 모순을 조롱하는 자가 있다면 죽여라. 그리고 남은 자들에게 그들이 나약함과 의심 때문에 죽어 마땅했다고 말해 주어라. 그러면 그들은 불가능한 것을 이루기 위해 자진하여 망가질 것이다.”
스터디에 천재소설 읽어달라고 애원하기 위해 쓴 글..
SF나 판타지 소설을 읽을 때 세계관에 관대한 편이다. 제일 싫어하는 건 설정집이다. 이야기 안에서 설명되는 선에서 그치고 '뇌절'하지 않을 때, 장대한 설정이 팬북일 때는 허용이다. 그런데도 새로 읽을 책을 고를 때 꽤 깐깐한 편인데 내가 정한 기준 하나를 통과하는 책이 거의 없어서다.
'그 세계에 사는 평범한 사람이 어떻게 사는지 상상할 수 있을 것'
이 기준을 통과할 뿐만 아니라 완전히 새로운, 매혹적인 세계를 창조해낸 천재작품 <다섯번째 계절>은 <부서진 대지 3부작>의 첫권이다. 세계관과 이야기가 아주 면밀히 연결되어있고 세계를 알아나가는 과정이 무척 재미있기 때문에 당신이 다른 정보를 접하지 않고 이 멋진 3부작을 읽으셨으면 좋겠다.
그래도 추천을 위해 몇가지 정보를 쓰자면, 이 책은 그동안 장르소설에서 자기 공간을 갖지 못했던 이들의 이야기들을 터질듯한 밀도로 담았다. 어머니, 소녀, 장애인, 트랜스젠더, 비-모노섹슈얼 등이다. 그리고 어스시 세계처럼, 이 세계 인물들의 피부톤도 검은색이 일반적이다.
주역들은 모두 특별한 힘을 가지고 있지만, 그 힘 때문에 처절한 학대를 당한 사람들이다. 크게 보면 혁명에 대한 이야기이지만 책 내용의 대부분은 그들이 세상을 바꾸는 계기와 과정, 그러니까 학대와 분노, 고통과 희생 등으로 이루어져 있다. 옥타비아 버틀러가 <와일드 시드>를 쓰면서 세상 모든 일에는 대가가 있다고 했다는데 이 책의 저자 제미신도 그렇고 흑인 여자들은 그 사실이 뼈에 새겨져 세상을 구성하는 대명제로 쓸 수밖에 없다는 생각을 끊임없이 했다... 그런데도 아름다운 부분들은 갈비뼈가 아프도록 아름다워서 이런 것들도 알고 있기 때문에 생존해서 이야기를 썼구나 싶기도 했다네요. 어쩌면 이런 고통을 겪고도 살아남은 사람으로서 자신이 살아남은 이유를 증언해야 한다고 느꼈던 게 아닐까 싶을 정도로.
(지금 사회심리학 강의에 자막을 다는 아르바이트를 하고 있는데, 실제로 상관의 착각Illusory Correlation에 따르면, 소수집단이 있을 경우 소수의 바람직하지 못한 행위 유형과 더 관련이 있는 것으로 착각하는 경향이 있다고 함)
특히 흥미로웠던 부분은 부성의 대립항이나 비교대상으로 다루지 않고 아주 독자적이고 독립적인 형태로 모성을 다룬다는 점이었는데(사실 그 밖의 많은 개념들도 이런 태도가 보인다는 점이 이 책의 미덕이 아닌가 싶다..)
생각해보면 당연한데도 새로운 접근이라 생각했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