처음에는 어울리지 않는 조합이라고 생각했다. 하지만 <나폴리 4부작>을 설명하는데는 <리바이어던>의 이미지가 필요하다.
소설은 사랑과 욕망과 인간에 대해 다룬다. 0과 1을 존재와 비존재, 완전과 불완전으로 설명할 수 있다면 인간은 모두 0에서부터 1까지를 오가며 진동하는 존재이다. 사람의 성격과 인생만큼 그들 내면도 수없이 많은 부분이 합쳐서 전체가 되고 자신이 갖고 있지 않은 것을 욕망한다. 하나하나의 인간이 가진 욕망과 무수한 감정들 인생들은 전체의 세계를 구성한다. 규칙 없이 무한히 불신하며 죽고 죽이는 자연 상태, 나폴리, 세계이다.
하지만 욕망은 자기 자신의 결핍에서 시작된 만큼 충족되었을 때 차갑게 버릴 수 있는 것이기도 하다. 소설의 후반부는 그래서 서늘하다. 주인공인 레누는 평생 지식, 지식인의 삶, 명성, 그리고 그녀와 같은 것을 추구하면서 앞서나가는 니노를 원한다. 레누는 이미 대학에 들어와 적응하자 작가가 되어버리고, 피에트로와 결혼해 명문가에 속하지만 익숙해졌을때 내버렸다. 그리고 마침내 평생 욕망하며 추앙하기도 하고 아무것도 아닌 존재라고 생각하려 노력하기도 했던 니노마저도 경질한다. 니노가 시류에 영합하는 정치인이 되기 전부터의 일이지만 그래서 더 차갑다. 레누는 이미 똑같은 일들을 수없이 반복했던 니노를 번번히 용서하고 다시 자기 인생으로 끌어들였다. 하지만 알베르토와 회한을 나누고 니노를 내칠 때 레누는 다르다. 그녀에게 니노는 어디까지 갔나 알려주는 부표 같은 존재인 것 처럼, 추월했다는 걸 알자마자 차가워진다. 미켈레가 릴라의 뺨을 치고 경멸했던것처럼.
근대 군주국가의 상징 리바이어던은 이런 불안정에서 인간 서로에게서 서로를 지키기 위해 상상된 존재이다. 리바이어던은 모든 인간에게 권력을 위임받고 모든 인간을 지배하는 권력을 가진다.
하지만 세상에는 분명 다른 형태의 감정도 있다. 어떤 사람들은 있는 그대로의 상대를 보면서 동시에 이해하려고 노력한다.
그러려면 자신을 비워야 한다. 가령 알베르토는 이미 옛날부터 레누가 니노를 사랑한다는 것을 알았다. 하지만 끊임없이 레누의 생각을 이해하려고 생각하고, 레누에 대한 자신의 생각을 레누가 받아들였으면 하고, 그런 마음을 접게 되었을 때 레누를 떠나간다. 릴라를 사랑했던 엔초도 다르지 않다. 그는 릴라가 자신을 통해 실현시키고 싶어하는 일, 릴라의 욕망, 릴라가 가장 좋았던 시절부터 가장 이기적이고 나빴던 시절까지 곁을 지켰지만 마침내 릴라에게 자신이 아무것도 아니라는 것을 받아들였을 때 스스로 사라진다.
하지만 자신을 비워내기 위해서 치열한 싸움을 겪어야 하는 관계도 있다. 레누는 평생 릴라에 대해 썼다. 정말 중요한 시기를 거치고 있다고 느낄 때마다 가상의 릴라를 상상하고 릴라의 의견을 알고싶어하고 릴라에게 도움을 구한다. 릴라의 딸 티나가 사라졌을때 어쩌면 소설의 소재를 위해 자기 딸을 내버린걸지도 모른다고 직감하는 유일한 상대이기도 하다. 반대로 릴라는 픽션 속에서 강해지는 리누의 상상력과 그녀가 치열하고 논리정연하게 사실을 배열하고자 하는 일들을 사랑하고, 자신의 삶을 남김없이 리누에게 소재로 제공한다. 소설의 결말은 리누의 최고작을 지배하는 모티프를 리나가 속여서 제공했다는 점을 암시하는데, 릴라가 정말 스스로의 삶을 레누에게 소재로 제공했다면 레누가 그랬듯이 레누를 생각하며 화를 내고 분해하기도 하며 스스로를 지켜내기도 하고 버티기도 하고 강해지기도 했을 것이다.
그런 관계는 각자를 강하게 하고, 스스로의 가장 추악한 부분까지 파고들 수 있게 부추긴다. 레누는 수기이자 릴라에 대한 글을 다 쓰고 잃어버린 줄 알았던 누와 티나를 받는다. 릴라 입장에서는 리누를 지배했던 모티프에 대한 소유권 주장이자 리누에 대한 일종의 보상이었겠지만, <나폴리 4부작>의 형태를 보면 리누는 아랑곳 않고 잃어버린 인형에 대한 이야기를 그대로 앞에 남기고 뒤에 진실을 수록하는 형식을 취했다. 릴라가 목숨처럼 소중히 여겼던 자신의 원고와 릴라가 자신을 가장 크게 필요로 한다고 느꼈을 때 릴라를 내쳤던 일들까지 낱낱이 적인 소설 말이다. 심지어는 릴라가 주었던 컴퓨터로 소설을 썼다는 내용도 중간중간 들어가 있다. 한마디로 잘라낼 수 있었던 내용이라는 뜻이다.
레누의 출간작은 페렌테의 소설 이전에 릴라에 대한 또 하나의 도발이므로, 독자는 뒤로 이어져 나갈 그들의 관계를 자연스럽게 상상할 수 있다. 세계가 계속되듯이 말이다.
두려움으로 지배하는 리바이어던, 두려움이 없어진 리누.
100명의 인간 리바이어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