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2.7월)
① 야훼 이외의 다른 신을 섬기지 말라. ② 우상을 섬기지 말라. ③ 하느님의 이름을 망녕되이 부르지 말라. ④ 안식일을 거룩히 지키라. ⑤ 너희 부모를 공경하라. ⑥ 살인하지 말라. ⑦ 간음하지 말라. ⑧ 도둑질하지 말라. ⑨ 이웃에게 불리한 거짓증언을 하지 말라. ⑩ 네 이웃의 재물을 탐내지 말라.
십계명의 교리는 명확하고 의심의 여지가 없다. 모든 금기와 마찬가지로 십계명 역시 인간을 ‘제한’하기 위해 만들어졌다. 이런 제한이 만들어진 이유는 그 당시 인간을 ‘제한할 필요가 있었다’는 뜻이고, 여기서 반대로 유추하자면 인간들이 그런 모습을 하고 있었다는 뜻이 된다.
다시말해 구약성서의 시대는 야훼 이외의 다른 신들이 난립했고, 우상을 숭배했으며, 하느님의 이름을 망녕되이 부르는 시대였고, 신을 충실히 섬기지를 않으니 안식일이 거룩하게 지켜지지 않았으며 사람들은 부모를 공경하지 않고 살인하고 간음하고 도둑질하고 이웃에게 불리한 거짓증언을 했고 이웃의 재물을 탐냈다. 정말 하나님에게 내려왔든 아니면 후세의 랍비들이 복원한 결과든 십계명은 이런 배경에서 하나님의 권위를 통해 금기를 지정함으로써 사회적 안정을 만들어 내고자 했던 시도다.
십계명의 규율이 오늘날에도 유효하게 여겨지는 까닭은 오늘날의 인간군상이 보여주는 모습이 옛날과 다르지 않기 때문일 것이다. 우리는 주위에서 부모를 공경하지 않고 살인하고 간음하고 도둑질하고 이웃에게 불리한 거짓증언을 하고 이웃의 재물을 탐내며 살아가는 모습을 너무나 쉽게 접할 수 있다. 9시 뉴스를 틀기만 해도 쏟아져 나오는 이런 정보들은 시대상과 무관하게 인간은 위에서 서술한 죄를 저지르기 쉬운 속성을 지니고 있는 거라는 생각을 들게 한다.
<데칼로그 : 10. 네 이웃의 물건을 탐하지 말라>의 형제들 역시 인간의 이러한 속성을 잘 보여주는 예이다. 그들은 참 소박하고 평범한 시민이지만, 어느날 고가의 우표책을 물려받고 나자 의심과 타성에 젖어들어 더 많은 것을 욕심내게 되고, 그 전까지는 상상도 못했을 행동들을 저지르게 된다. 심지어는 서로를 의심해 고발하기까지 하는 이들의 행동이 ‘인간적’으로 보이고 마지막의 경쾌한 화해가 오히려 ‘현실에서 보기 드문’것처럼 생각되었던 까닭은 인간이 타성에 젖어들기 쉬운 나약한 존재라는 사실의 반증인 것 같다. 이웃 아닌 형제마저도 이러할진데, 이웃 아니고 타인이 되었을 경우는 또 어떠할까.
하지만 오히려 인간이 그런 속성을 가지고 있다는 사실을 인정하면 규율은 다르게 읽힐 수 있다. 바로 인지의 거울이 되는 것이다. 남의 물건을 훔치지 마라,에서 나아가서 인간은 남의 물건을 탐내기가 쉬우니 시시때때로 내가 남의 물건을 탐내고 있는 게 아닌지 확인해야 한다. 가 되는 것이다. 여기서부터 십계명의 규울은 ‘지키지 않으면 하나님의 처벌이 내리는 절대적인 규율’이 아닌 ‘인간을 인도하는 지침’이 될 수 있고, 이는 인간의 주체적 선택을 돕는 시작점이 될 수 있다. 단지 사실유무의 결과와 판단을 수행하여 인간을 종속적 존재로 만드는 것이 아닌, 인간 자신을 알게 하고 삶 전반과 선택에 영향을 줄 수 있는 지침이 될 수 있는 것이다.
<데칼로그> 역시 직접 아이러니한 상황제시를 통해 이러한 성찰을 가능케 하려는 시도라고 볼 수 있다. 영화의 마지막에서 형제는 자신들이 했던 일을 고백하고, 서로 웃으며 새로운 우표를 모으기 시작한다. 영화 전반에는 우표를 모으던 아버지에 대한 원망으로 소원했고, 중반에는 욕심에 끌려다니며 허겁지겁 눈 앞의 이득을 쫓았던 모습들과 종반의 편안하고 자유로워 보이는 모습은 극명한 대조를 이룬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