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0년에 씀. 아직 두 영화 좋아하고 가끔 본다. 취향은 변하지만 좋아하는 작품은 쉽게 변하지 않는다.)
좋아하는 영화를 꼽기는 쉽지만, “가장” 좋아하는 영화를 꼽자면 참 힘들다. 어쨌든 두 편이 떠오르기는 하지만 사실 인생을 바꿔놓은 것도 아니고, 딱히 교훈을 준 것도 아니라 ‘인생의 영화’라는 거창한 타이틀에 어울리는 작품들인지는 잘 모르겠다.
어쨌든 영화 두 편. <이터널 선샤인>과 <킬러들의 도시In Bruges>
이 두 영화의 공통점은 일단 ‘한심하다’는 거다. <이터널 선샤인>의 주인공 조엘은 여자친구에게 차인 뒤 홧김에 기억을 지우러 간 일관성 없는 찌질이고, <킬러들의 도시>의 주인공 레이 역시 죄책감에 괴로워하면서도 여자나 헌팅하러 다니는, 마찬가지로 나약하고 일관성 없는 찌질이다. 이 두 주인공들은 영화 내내 멍청한 짓을 하고, 영화는 이 둘을 따라 빙글빙글 헤맨다.
두 번째 공통점은 ‘심각하다’다. 조엘은 제가 지우기로 마음먹은 제 기억 속에서 여자친구를 데리고 도망친다. 레이는 어쩌다 사람을 죽이러 가게 된 도시에서 어쩌다 사랑에 빠지고 어쩌다 죽을 위기에 빠진다. 상황은 참 우습게 흘러가지만 주인공들은 심각하다. 지켜보면서 마냥 웃기만 하기에는 그들의 심각함이 너무 무겁다. 이들의 고민은 진짜다. 이 영화들이 무게를 지니고 있는 것은 그 때문일 것이다. 남의 눈으로 지켜보면 한심하지만 당사자들에겐 심각한 이야기는 결국 우리가 매일매일 맞닥트리는 현실과 닮아있다.
목표했던 것은 엉뚱한 결과를 가져오고 좋은 의도가 항상 좋은 결과를 가져오는 것은 아니며 중요한 사건들은 우리 곁을 스쳐지나간다. 지키고 싶은 것을, 갖고 싶은 것을 쥐려고 아둥바둥해도 의도대로 되는 것은 아무것도 없다. 되는 일이 아무것도 없어도 어떻게든 필사적일 수밖에 없는 등장인물들은 나와 멀지 않다. 나의, 우리의 삶 역시 영화로 찍어본다면 이러할 것이다.
심각하지만 우습고, 우스우면서도 비극적인 인생들. 상황은 파국으로 치닫고 더 이상 나빠질 구석도 없는 것처럼 보인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터널 선샤인>의 마지막 대사는 “괜찮아요.”고, <킬러들의 도시>의 마지막 대사는 “나는 살고 싶었다.”다. 이 영화들은 이렇게 무진장 대책없이 현실의 무게를 받아넘긴다.
정성일 평론가는 어떤 영화를 좋아하는 것은 곧 그 영화가 세상을 바라보는 방식을 좋아하는 것이라고 썼다. 나는 이 두 영화의 낙관적인 시선을 좋아한다. 되는 일이 없고 진지해도 엉망진창 웃기는 짜장이 되지만 싱겁게 뭐 어때, 라고 말하는 이 영화들이 참 좋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