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 방 책상 위 십자가가 걸려있던 자리에 이제 <트루 디텍티브>의 포스터가 있다.
포스터는 "Touch Darkness and Darkness touches you back" 니체가 괴물을 만지면 괴물이 니체를 만진다는 유명한 문장을 인용한다. 드라마는 이 외에도 니체를 여러번 언급하는데, 대표적인 대사인 "시간은 평평한 원이야 Time is a flat circle" 이라는 대사도 니체의 <즐거운 지식 Gay Science>에서 설명되는 말이라고 한다. 친구가 발견한 레딧 글을 옮겨보면 대략 이렇다.
"네가 외롭고도 외로운 날 낮이고 밤이고 언제가 되었던 가장 외로운 시간에 악마가 네게 와서 속삭인다고 생각해 봐. '지금까지 네가 살았고 지금 살고 있는 이 삶과 같은 삶을 너는 다음에도 또 한번, 그리고 셀 수 없을 만큼 많이 되풀이해서 살아야 해'
...너는 악마를 저주하고 이를 갈지 않겠어?
아니면 엄청나게 전율하며-여러번 반복되었던 순간이었을지도 모르지만-이렇게 말하게 될까?
'신이시여 제 인생에서 이보다 더 성스러운 말은 없었습니다'라고?
“What, if some day or night a demon were to steal after you into your loneliest loneliness and say to you: 'This life as you now live it and have lived it, you will have to live once more and innumerable times more' ... Would you not throw yourself down and gnash your teeth and curse the demon who spoke thus? Or have you once experienced a tremendous moment when you would have answered him: 'You are a god and never have I heard anything more divine.”
비슷한 내용을 읽었다 싶어서 책장을 뒤졌는데 한참 시간이 지나서야 겨우 찾았다. 전혜린 에세이였고, 제목부터가 이 내용이었다.
10월 13일
끝없는 회의와 숨가쁜 교차, 그리고 둔중한 단조(Monotenie), 이것이 생활의 리듬인 것 같다.
될 수 있는 대로 감정은 질식시켜 버릴 것, 오로지 맑은 지혜와 의지의 힘에만 기댈 것, 이것이 사람이 도달할 수 있는 최고의 곡예사(Akrobat)인 것 같다.
그 상태에서만은 야심(Ambition)을 느낀다. 다른 모든 것은 아무래도 좋다. 물같이 맑은 의식의 세계에서 늙은 잉어같이 살고 싶다.
니체의 말, '이 모든 괴로움을 또다시!'가 얼마나 숨막히게 무서운 말인가를 느낀다. 온갖 싫은 일들, 너저분하고 후줄그레한 일들, 시시하고 따분한 일들이 깔려 있는 운명의 아스팔트지만 이 길이 안 끝났으면 하는, 또는 또 한번 하는 의욕은 실로 무겁고 기름진 삶의 욕구(Leben-wollen)의 사고일 것이다.
ㅡ전혜린, <전혜린 에세이 2>
전혜린의 에세이는 또 우연하게도 같은 날 읽었던 버지니아 울프의 에세이와 내용이 겹쳤다.
울프는 자신을 구성하는데 영향을 미친 '존재의 시간(대표적으로 블룸스버리에서 보냈던 나날)'과 무의미하게 흘러갔던 '비존재의 시간(대표적으로 언니 바네사와 함께 응석받이 아버지의 시중을 들고 배다른 형제 조지에 의해 억압당했던 시절)'에 대해 긴 지면을 할애해서 묘사하고 있었다.
읽었던 장면들이 콜라주처럼 겹치고 의미 있는 시간을 보내는 법에 대해 설명하고 있었다.
... 나로 말하자면 최근 들어 우연이 맥락을 구성하는듯 한 초보적인 구상은 자주 떠오르는데 정작 표현하려고 하면 기술이 많이 무뎌졌다는 실감만 든다. 단조로움과 회의, 야심을 구분하는 감각이 뒤섞여서 뭉개진 채 보내는 시간이 많다. 어떤 일을 하든지간에 끊임없이 감각을 환기하고 글로 옮겨나가는 연습을 계속 해야겠다고 느끼게 된 일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