감상
<프로메테우스>: 종교적 의례, SF의 혼돈-재창조 내러티브
(2012.4. 레포트로 제출.) 1. 서론 지구 문명이 외계인, 공룡, AI 등 타자와의 접촉으로 파멸하는 숱하게 있었고 또 제작되며 대중들을 불러 모으고 있다. 우리가 현재 과학과 합리주의의 세계에서 살고 있고, 영화 제작 산업은 그 첨단 기술이 빠르게 유입되는 분야 중 하나라는 것을 생각해 보면 이 가상의 혼돈-재창조 내러티브는 인위적으로 사회를 혼돈 상태로 끌고 갔던 종교적 의례와 유사한 모습을 보인다. 과학의 발전으로 상징되는 직선적 시간관이 픽션에서나마 전복되고 이전과는 다른 모습으로 복구되는 이러한 이야기가 반복해서 제작되고 대중들을 끌어모으는 현실은 그 자체로 의미심장하다. 이러한 SF영화 중 가장 최근의 예를 들자면 리들리 스콧의 영화 가 있다. ‘기술적 진보’를 상징하는 라는 이름은 여..
<데칼로그>: 계율의 목적=인지
(2012.7월) ① 야훼 이외의 다른 신을 섬기지 말라. ② 우상을 섬기지 말라. ③ 하느님의 이름을 망녕되이 부르지 말라. ④ 안식일을 거룩히 지키라. ⑤ 너희 부모를 공경하라. ⑥ 살인하지 말라. ⑦ 간음하지 말라. ⑧ 도둑질하지 말라. ⑨ 이웃에게 불리한 거짓증언을 하지 말라. ⑩ 네 이웃의 재물을 탐내지 말라. 십계명의 교리는 명확하고 의심의 여지가 없다. 모든 금기와 마찬가지로 십계명 역시 인간을 ‘제한’하기 위해 만들어졌다. 이런 제한이 만들어진 이유는 그 당시 인간을 ‘제한할 필요가 있었다’는 뜻이고, 여기서 반대로 유추하자면 인간들이 그런 모습을 하고 있었다는 뜻이 된다. 다시말해 구약성서의 시대는 야훼 이외의 다른 신들이 난립했고, 우상을 숭배했으며, 하느님의 이름을 망녕되이 부르는 시..
(대략 10년 전) 가장 좋아하는 영화
(2010년에 씀. 아직 두 영화 좋아하고 가끔 본다. 취향은 변하지만 좋아하는 작품은 쉽게 변하지 않는다.) 좋아하는 영화를 꼽기는 쉽지만, “가장” 좋아하는 영화를 꼽자면 참 힘들다. 어쨌든 두 편이 떠오르기는 하지만 사실 인생을 바꿔놓은 것도 아니고, 딱히 교훈을 준 것도 아니라 ‘인생의 영화’라는 거창한 타이틀에 어울리는 작품들인지는 잘 모르겠다. 어쨌든 영화 두 편. 과 이 두 영화의 공통점은 일단 ‘한심하다’는 거다. 의 주인공 조엘은 여자친구에게 차인 뒤 홧김에 기억을 지우러 간 일관성 없는 찌질이고, 의 주인공 레이 역시 죄책감에 괴로워하면서도 여자나 헌팅하러 다니는, 마찬가지로 나약하고 일관성 없는 찌질이다. 이 두 주인공들은 영화 내내 멍청한 짓을 하고, 영화는 이 둘을 따라 빙글빙글 ..
우리를 울게 하는 것들
(2011.11.30.) 의 주인공 로이는 가진 걸 다 잃은 삼류 스턴트맨입니다. 촬영 중 큰 사고를 당해서 하반신이 나갔는데, 연인은 그때 다른 남자와 입맞춤을 나누고 있었어요. 한순간에 반신불수, 마약중독자, 알콜중독자가 돼버린 그는 죽을 계획을 세웁니다. 그 계획이란 호기심 많은 소녀 알렉산드리아가 껌뻑 죽을 만큼 재미난 이야기를 들려주고는, “더 듣고 싶으면 ‘모르핀’이라고 쓰여 있는 약병을 가져오라”고 꼬드기는 것이었습니다, 이야기에 흠뻑 빠진 알렉산드리아는 그의 의도대로 움직입니다. 하지만 훔쳐온 약은 가짜였고 절망감에 몸부림치는 로이를 위해 다시 약을 훔치려던 알렉산드리아는 발을 헛디뎌 크게 다치고 맙니다. 죽다 살아난 알렉산드리아가 이야기를 마저 해달라고 부탁하자, 로이는 등장인물들을 모두..
<문라이트>: 개인의 탄생, 관계와 세계
(2017.4.7.) 성장영화라는 장르, 소수자로서의 정체성 의 주 소재는 흑인(블랙) 사회적 약자인 성소수자(리틀)이다. 또한 1부의 소제목 ‘리틀’은 작은 아이였던 샤이런이 성장하는 성장영화임을 암시한다. 리틀, 샤이런, 블랙 소년부터 성인까지의 긴 시간을 다루고 있는 의 캐릭터들은 독특한 특징을 가지고 있다. 의 가장 큰 특징은 주인공의 다른 세 인생시기를 다루고 있고 이에 따라 세 사람의 다른 배우가 세 개의 다른 이름을 갖고있는 한 명의 주인공을 연기한다는 점이다. 3개로 분절된 서사는 각각 3막구조의 발단-전개, 위기-결말을 담당하면서 각 부에서도 독립된 기승전결의 전개를 보인다. 즉 한 인물의 연속적인 성장기인 동시에 따로따로의 완전한 이야기이기도 하다는 이야기다. 이런 이야기의 분절과 연속..
<어벤져스: 엔드게임>: 21세기 여성혐오의 교과서
들어가기 전 잡담: 나는 시리즈의 팬은 아니다. 를 극장에서 5번 보고, 미국 버전에만 포함된 슈와마 쿠키 장면을 보려고 미군 부대에 초대를 받아 들어갔었지만 이 시리즈를 싫어한다. 과거에 조스 위든의 팬이었고 그가 만든 드라마 를 여러 번 재주행했다. 그러나 의 첫 장면이 시작하는 순간, 그러니까 블랙 위도우가 자장가로 헐크를 재우는 순간 이 시리즈가 싫어졌다. 농장만 생각하면 손발이 덜덜 떨리고 눈물이 난다. 에도 그 배경으로 농장이 나오는데 뛰쳐나갈 뻔 했다. 블랙 위도우의 과거 설정이 그럴 줄 누가 알았으며, 호크아이가 유부남일 줄 누가 알았겠어? 그따구 반전을 굿아이디어라고 추진한 놈들 아직도 패버리고 싶음. 그 뒤 조스 위든이 저질렀던 불륜이며 어록들이 줄줄이 풀렸고... 을 보고 토니에 이입..
2017년 베스트 경험/독서/영화 5
경험: 생각해보면 외부적으로도 뭘 열심히 하긴 했는데 인상깊게 남은건 정말 개인적인 차원의 덕질/결심/행동 등등인듯. 1. 플레이 2017 개인적으로 무척이나 힘든 한해였지만(대체 언제쯤 이 말을 안 쓸 수 있을까) 드에를 만났으니 다시 태어나도 몇 번이라도 다시 살 수 있다. 여성으로 인간으로 주체적으로 살기 어려울 때 떠올릴 수 있는 서사를 찾았다는거 정말 좋고 n년만에 입덕작 찾아서 더 좋음. 바쁜 한 해 보내다 잠깐 짬 났을때 정말 무뜬금으로 잘생긴 최애 좋아하신다는 분들이 왜 못생긴 대머리 엘프에 열광하나 이유가 있을 것이다 궁금했던 과거의 나 잘했다 매우 이유가 있었다. 2. 의 앤더스를 좋아하게 된 거 여러가지 비중 있는 외부적 판단이 있었던 해였고 이 판단들을 어떻게 받아들여야 할지 앞으로..
평평한 원의 시간, "이 모든 괴로움을 또 다시"
내 방 책상 위 십자가가 걸려있던 자리에 이제 의 포스터가 있다. 포스터는 "Touch Darkness and Darkness touches you back" 니체가 괴물을 만지면 괴물이 니체를 만진다는 유명한 문장을 인용한다. 드라마는 이 외에도 니체를 여러번 언급하는데, 대표적인 대사인 "시간은 평평한 원이야 Time is a flat circle" 이라는 대사도 니체의 에서 설명되는 말이라고 한다. 친구가 발견한 레딧 글을 옮겨보면 대략 이렇다. "네가 외롭고도 외로운 날 낮이고 밤이고 언제가 되었던 가장 외로운 시간에 악마가 네게 와서 속삭인다고 생각해 봐. '지금까지 네가 살았고 지금 살고 있는 이 삶과 같은 삶을 너는 다음에도 또 한번, 그리고 셀 수 없을 만큼 많이 되풀이해서 살아야 해' ...
<호라이즌 제로 던>과 19세기 여성 작가들
*170926 13시 일부 내용 수정 보완 원래 이 글의 제목은 "은 페미니스트 게임이고 페미니즘은 재밌습니다."였다. 메인 글자수 관계로+좀 더 내용과 연관된 제목을 써야할 것 같아서 바꿈. 이 페미니스트 게임이라고? or 페미니스트 게임인 건 알겠는데 19세기 여성 작가들이 무슨 관련이지? = 계속 읽으시면 됩니다 몇주 전 을 눈물콧물 흘리면서 플레이했다. 너무너무 재밌는 액션 게임일 뿐 아니라 단연코 최고의 페미니스트 게임이기까지 하니 더할 나위 없다. 이 게임이 페미니즘 사상을 바탕으로, 적극적으로 도입해서 만들어진건 게임을 해보면 충분히 알 수 있는 사실이다. 에일로이-가이아-엘리자베트 소벡의 관계가 노라의 가모장제도를 통해 이어지는 것도 그렇고, 메인 스트림과 사이드 퀘스트의 주요 역할은 비백..